안압지는 신라의 천년 궁전인 반월성에서 동북쪽으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통일기에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를 축적한 왕권은 지극히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크고 화려한 궁전을 갖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리하여 통일 직후인 674년에 안압지가 건립되었고, 679년에는 여러 개의 성문과 화려한 궁궐을 갖춘 큰 궁궐이 건립되었다. 동궁 등 궁궐이 있던 안압지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이다.안압지와 주변 건축 유적들은 당시 궁궐의 모습을 보여준다. 신궁 임해전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으나 건물 터의 기초석만 발굴되었다. 임해전과 안압지(安hae地)의 기록에 따르면, 문무왕 14년(674년)과 경덕왕 19년(760년)에 두 차례, 임해 군신에게 연을 바친 기록은 효소..
이미 천전리에 개장한 대곡천도 대곡리에 S를 그려 병풍 같은 절벽과 넓은 개울과 함께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대곡리의 아름다움은 '반구대' 터에 이르면 절정에 이른다. 반구대에 닿으려면 간선도로(35국도)를 버리고 대곡리 암각화와 반구대 간판을 따라 조용한 진입로 3㎞를 타고 반구대로 갈 수도 있고, 걷기 좋으면 천전리에서 대곡천까지 국민순례길을 갈 수도 있다. 어쨌든 두 도로의 입구에는 혼자 있으면 흥이 나기 쉬운 대곡천의 자연경관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분위기를 더욱 평화롭게 하는 고택이 있다. 방계서원이다. 반예서원은 1712년(숙종 38) 정몽주, 이언적, 정구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정몽주(1337~1392)는 이곳에 살면서 정자를 짓고 제자들과 함께 서재를 지었다. 이언적(1491~1..
인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생겨난 돌들은 지구와 인류의 세월을 말해주면서 전후로 멈춰섰다. 공룡시대부터 선사시대, 문인시대까지 전시를 간직하고 있는 천전리 암각화처럼 대곡리 암각화는 신석기 말기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암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사연댐의 물 때문에 늘 물속에 잠겨 있던 암벽화는 겨울이나 큰 가뭄에 세상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대곡리 암각화는 천전리에서 대곡천을 따라 약 2km 하류인 반구대봉 아래쪽에 위치한 암벽에 그려져 있다. 칠해진 암벽은 높이 70m, 폭 20m 정도인데 반해 칠한 부분은 높이 2.5m, 폭 9m 정도 된다. 그림의 내용은 호랑이, 사슴, 멧돼지, 고래, 인간 등 육지동물 200여 점으로, 천전리 암각화에는 일반적인 기하학적 무늬가 없는 대신 사실적이고 ..